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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의 낭독 - 노경수, 무제

숲깊은 2016. 1. 4. 14:05


 


                                      노경수

 

아침에 콩나물국이 나온다

넓은 대접에 밥을 말아 가지고 온다

아이들은 그것도 정말 잘 먹는다

점심은 콩나물국에 김치를 넣은 국이 나온다

저녁은 콩나물국에 김치를 넣고

거기다 두부를 넣은 국이 나온다

거기다 밥을 말아서 아이들에게 먹인다

잘 먹는다 왜?

배고프니까

 

어느 날 어느 단체에서

몇몇 개의 박스 상자를 들고와서

현수막 하나 내어걸고

시설 아이들 불러내어 앉히고 세우고 해서

웃으라며 사진 찍고 갔다

그들이 사온 과자들은 고스란히 창고로 들어가

썩고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런 위문품은 들어간 순서대로 창고에서 나온다

유통기한 다 지난 바람 들어간 과자

그것도 잘 먹는다 왜?

배고프니까

내가 짐승이 되어가는 기분

춥고 배고픈 것보다 슬픈 사실





"최근 들어 더욱 정직하다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촌스럽게도너무 정직하면 고지식해지고 썩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었지만최근 들어서는 촌스러운 게 좋아졌다우직하고시도 그런 게 있는 것 같다세상일을 곧이곧대로 말한다는 게 아니라자기에 대해 정직하달까. 3인칭을 쓸 때도 1인칭의 느낌이 나는 시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하달까그런 시들을 좋아한다그래서 꼭 시인만이 시인이 아니라자기 삶의 진실을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의 말은 다 시일 수 있다첫 번째로 낭독할 시가 그렇다엄밀히 말하면 시가 아니다어떤 분을 인터뷰한 녹취록에 있던 말 구절이다시집에 실려 있는 시가 아니고말한 사람도 시라고 생각하고 말한 것이 아니고일종의 증언이다저는 시란 글자이기 이전에 음성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시라고 생각한다이 분은 중증장애인이고 여자분인데근육무력증에 걸려서삶을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었을 것이고지금도 젊은 분인데시설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는데그 시설에서의 삶을 말하는 증언이었다이 증언이 마치 철창에 자기 몸을 부딪치고 자학하다가자기 살을 뜯는 어떤 짐승이랄까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있는 인간에 대한 진실을 말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그 분의 이름은 노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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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9 詩콘서트, 윤덕원입니다

2부 시를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다 - 인문학자/철학자 고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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