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의 낭독 - 노경수, 무제
노경수
아침에 콩나물국이 나온다
넓은 대접에 밥을 말아 가지고 온다
아이들은 그것도 정말 잘 먹는다
점심은 콩나물국에 김치를 넣은 국이 나온다
저녁은 콩나물국에 김치를 넣고
거기다 두부를 넣은 국이 나온다
거기다 밥을 말아서 아이들에게 먹인다
잘 먹는다 왜?
배고프니까
어느 날 어느 단체에서
몇몇 개의 박스 상자를 들고와서
현수막 하나 내어걸고
시설 아이들 불러내어 앉히고 세우고 해서
웃으라며 사진 찍고 갔다
그들이 사온 과자들은 고스란히 창고로 들어가
썩고 있다는 걸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런 위문품은 들어간 순서대로 창고에서 나온다
유통기한 다 지난 바람 들어간 과자
그것도 잘 먹는다 왜?
배고프니까
내가 짐승이 되어가는 기분
춥고 배고픈 것보다 슬픈 사실
"최근 들어 더욱 정직하다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촌스럽게도. 너무 정직하면 고지식해지고 썩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촌스러운 게 좋아졌다. 우직하고. 시도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세상일을 곧이곧대로 말한다는 게 아니라, 자기에 대해 정직하달까. 3인칭을 쓸 때도 1인칭의 느낌이 나는 시.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하달까. 그런 시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꼭 시인만이 시인이 아니라, 자기 삶의 진실을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의 말은 다 시일 수 있다. 첫 번째로 낭독할 시가 그렇다. 엄밀히 말하면 시가 아니다. 어떤 분을 인터뷰한 녹취록에 있던 말 구절이다. 시집에 실려 있는 시가 아니고, 말한 사람도 시라고 생각하고 말한 것이 아니고. 일종의 증언이다. 저는 시란 글자이기 이전에 음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라고 생각한다. 이 분은 중증장애인이고 여자분인데, 근육무력증에 걸려서, 삶을 포기하고 싶은 적도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젊은 분인데, 시설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그 시설에서의 삶을 말하는 증언이었다. 이 증언이 마치 철창에 자기 몸을 부딪치고 자학하다가, 자기 살을 뜯는 어떤 짐승이랄까,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 있는 인간에 대한 진실을 말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분의 이름은 노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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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9 詩콘서트, 윤덕원입니다
2부 시를 사랑하는 그/녀를 만나다 - 인문학자/철학자 고병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