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 - 고작,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나는 '고작'
너는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 가장 슬픈 일이라 묻는다면
날 떠나버린 어긋나버린 너도 아닌
변해버린 마음도 아냐 잔인했던 말들도 아냐
식어가는 체온도 무너지는 마음도 아냐
어쩜 이 모든 것이 환영보다 못한
그저 그런 것일지 모른다는 게
넌 날 원한다고 한 번 말하지 않았지
그랬다면 그 순간이라도 나에겐 진실이었을텐데
그렇게 목마르게 내가 좇던 니 사랑은
사랑이라 부를 수도 없는
고작 이런 건지도 몰라
넌 어떤 나긋한 아이의 품 안에서
날 떠올리지 노래하지도 않겠지만
난 아직 너를 노래해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수많은 색이 뒤섞여 엉망이된 물감처럼
내가 네게 부르는 마지막 사랑 노래는
이토록 추하고 탁하기만 해
이젠 내가 바라는 게 정말 너인지 모르겠어
단순히 그리워 할 사람이 필요해선지도 몰라
그리고 그 자리에 니가 있는지 모르겠어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이란 건
고작 이런 건지도 몰라
우주를 가득 채운 사랑과
블랙홀처럼 커지는 불안
입속을 가득 메운 키스와
꽉 쥔 두 사람의 손도
내 마음을 가득 채운 너의 마음
언제나 아쉬운 가로등 밑
비누방울처럼 영롱한 시간은
언제 터질 줄 모르는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단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날 바라보는 게 아니고
날 바라보고 있단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나에게 했던 수많은 말
부드럽게 움직이던 그 입술
귓속을 가득 메운 음성은
눈을 감으면 사라져
세상에 유일하게 영원한 건
영원이란 단어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지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단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날 바라보는 게 아니고
날 바라보고 있단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바라보는 게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