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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 고작,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숲깊은 2016. 1. 22. 01:53


나는 '고작'

너는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 가장 슬픈 일이라 묻는다면

날 떠나버린 어긋나버린 너도 아닌

변해버린 마음도 아냐 잔인했던 말들도 아냐

식어가는 체온도 무너지는 마음도 아냐

어쩜 이 모든 것이 환영보다 못한 

그저 그런 것일지 모른다는 게


넌 날 원한다고 한 번 말하지 않았지

그랬다면 그 순간이라도 나에겐 진실이었을텐데

그렇게 목마르게 내가 좇던 니 사랑은

사랑이라 부를 수도 없는 

고작 이런 건지도 몰라


넌 어떤 나긋한 아이의 품 안에서

날 떠올리지 노래하지도 않겠지만

난 아직 너를 노래해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수많은 색이 뒤섞여 엉망이된 물감처럼

내가 네게 부르는 마지막 사랑 노래는

이토록 추하고 탁하기만 해


이젠 내가 바라는 게 정말 너인지 모르겠어

단순히 그리워 할 사람이 필요해선지도 몰라

그리고 그 자리에 니가 있는지 모르겠어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이란 건

고작 이런 건지도 몰라








우주를 가득 채운 사랑과

블랙홀처럼 커지는 불안

입속을 가득 메운 키스와

꽉 쥔 두 사람의 손도


내 마음을 가득 채운 너의 마음

언제나 아쉬운 가로등 밑

비누방울처럼 영롱한 시간은

언제 터질 줄 모르는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단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날 바라보는 게 아니고

날 바라보고 있단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나에게 했던 수많은 말

부드럽게 움직이던 그 입술

귓속을 가득 메운 음성은

눈을 감으면 사라져


세상에 유일하게 영원한 건

영원이란 단어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는 지금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사랑하고 있단 너의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날 바라보는 게 아니고

날 바라보고 있단 너의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날 바라보는 게 아니고